찬, 젠, 선, 그리고 깨달음
찬, 젠, 선은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의 선의 발음이다. 이처럼 나라마다, 각기 발음은 다르지만, 하나의 목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바로 선의 궁극적 목표인, 깨달음이다.
그래서 각 단어의 발음은 중요하지 않다. 그 것들은 목표를 향해 갈때 필요한 도구와도 같다.
즉 태권도, 가라테, 쿵푸가 있다, 그 것들을 큰 그림에서 보면 다 똑같다. 수련을 해서
건강해지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각국의 사람들은 그들의 무술이 우월하다고, 주장하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 효용 가치, 즉 건강이다.
그러니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진정한 자신을 찾는, 깨달음만이 세상의 모든 질문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고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에 나는 오직 본질의 대한 이야기만을 말하려고 한다.
만약, 우리가 바르게 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을 증명하고, 부처님을 증명한다면, 맹목적으로
누군가의 말을 따르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했듯이, 어떤 위대한 글과 언어가 있다해도, 나를 찾는 것과는 관계가 전혀없다.
부처님의 말씀은 우리의 번뇌를 독화살에 비유한다.
만약 우리가 지금 독화살에 맞았다면, 우리는 이 화살이 어디서 날아온 것이며, 어떤 의사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연구하면서, 골든타임을 포기할 것인가?
지금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의사를 만날 수 있다면, 그는 내 운명의 의사가 될 것이다.
또한, 나를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의사 역시,지금 내 눈앞의 의사다.
그렇다면 부처님을 존재하게 한 깨달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큰 틀에서 모든 종교의 최상위의 가르침이며, 작은 면에서는 우리의 본성이기도 하다.
깨달음을 어떻게 설명하든지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어떤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을 가르키는 말이 된다.
또한 깨어난 자의 말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릇된 견해와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훌륭한 도구이기도하다.
그래서 이렇게 가리킬수 없는 것을 가리키면서 말하는, 내가 바보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앞서간 이들도 그랬듯이 나역시도 평생 해야 할 일이다.
내가 그것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는, 유일한 이유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모든 것이 그것이고,
심지어 숨쉬는 것 역시 그것이다, 아니라면 다른 무엇이겠는가?
예를 들어, 나는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하려고 한다, 그 것의 성별은 남자고, 성질이 급하지만
보통은 상냥하고, 공놀이를 좋아하며, 그 것의 이름은 젠이다.
답은 “나의 개" 젠이다. 내 힌트가 끝나기도 전에 "정답은 당신의 개, 젠이야!" 라고 답을 맞힌 사람은 매우 드문일 일것이다.
나의 개를 이미 잘 알고 있었던지, 혹은 내가 무슨말을 하는 지,
이미 알고 있었다면 쉬웠겠지만, 답을 몰랐다면 정말 알기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이것은 마치 설법을 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 것'라는 말은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고 쓰이고 있지만, 그 것은 무엇이든지 될 수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생물, 수많은 육체적 조건, 그리고 영리한 것에 대한 수많은 기준, 정도와 느낌 또한
모두 다 다르며, 세계의 각국마다 이름이 독특하고 발음하기 어려운 점이 있고, 그 나라의 문화를
모른다면, 이름인지 아닌지 조차도 구별하기 어렵다.
깨달음 역시, 우리가 모른다고 하지만, 사실은 절대로 모를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쉽고도 어렵고,
어렵고도 쉽다고 한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