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본질

 




지금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불교관에 사로잡혀 있었다.

커다란 불상 앞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바라고, 환상을 기대하고, 미래를 동경하며 부처님의 말씀을 자기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받들며, 삶을 낭비하고 있다.


부처님이 남긴 말씀은 책으로 엮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또 그가 생전에 하신 말씀의 목적은 오직 깨달음 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깨달음의 가르침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의 치명적인 실수이다.


며칠 전, 나는 웅장하고 화려한 한 사원에서, 여러 외국 제자들에게 명상을 하는 방법과 절의 예법을 엄숙한 표정과 말로 설명하시는 잘 알려진 듯한 선승의 인터뷰를 보았다.


사람들은 본격적인 명상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수줍은 기대감으로 평화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마치 학교에서 처음으로 수업을 듣는 아이들 같았다.


오래 전에 나는 그 들과 같았다. 나역시도 그렇게 많은 날들을 보냈다. 인생에서 좌절이나 아픔이 오면 무언가를 찾아해매고, 또다시 아픔이 되살아나면... 나는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또 그렇게 앉아 있었다.


선승과의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자기의 철저한 반성과 명상의 일상적 실천을 통해 점진적으로 꾸준히 실현하는 것이 선의 목표라고 말했다.


불행히도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불교와 관련된 180도 잘못된 상식이다.

이론상 다시 본래로 되돌아 오려면 180도 더 헤매어야 할지 모르지만, 그것 조차도 돌아온다는 보장은 아무도 해줄 수없다.


왜냐하면 출발점인 0도와 도착점인 360도는 같지만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공항에 있다, 한사람은 이미 세계를 한바퀴 돌아 온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공항에서 한번도 떠난적이 없이 머물러 있던 사람이다.  

현재 두사람의 위치는 같지만 두사람은 같은 조건일 수 없다, 


여기까지가 아직 스스로에게 눈을 뜨지 못한 사람들에게 해줄 수있는 말이고, 


눈을 뜬 사람들에게는 “머무는 점도 같고, 결코 다를 수는 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깨달은 사람에게는 깨달음이 없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이 후의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어쨋든, 본질적으로 선은 자신의 몸보다 큰 붓으로 정확하게, 동그란 큰 원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오렛동안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본질은 이 시점에서 바로 가리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0도와 360도는 포인트는 같지만 다르다.

그것은 마치 천국과 지옥이 여기 같은 곳에 있는 것 같다.


이 때문에 선은 쉽고 어렵고, 또한 어렵고 쉽다. 이말도 깨어나지 못한 입장에서 어렵다 또는 쉽다라고 말하는 것이지만, 깨어난 자리에서는 그 모든 말을 뛰어넘는다.


비슷한 것은 가짜이고, 그런 것들이 수억 개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진실과는 바꿀 수 없고, 설사 바꾸고 싶다고 하더라도 절대 그럴 수 없다.


이것은 마치 돼지족발을 재료로 사용하지 않은 독일의 학센 (독일식 족발)을 닭다리나 칠면조다리를 재료로 만들어 파는 것과 같다.


돼지의 다리로 만들어야 하는 학센을 어떠한 이유로 재료의 본질을 잃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닭다리나 칠면조다리의 차선책 쓰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짜 학센이 설령 진짜 핫센보다 더 맛있다고 해도, 그것은 핫센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가짜이고 본질을 잃었다.


우리들은 우연히 어딘가에서 친절한 사람을 만나, 진짜 핫센을 보기 전에는 그것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진실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극히 형식적인 학센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했던 그 사람과 가짜 학센이 진짜라고 믿고 그 맛에 물들었던 손님들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 랩퍼의 노래처럼 결국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는 사실을 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성은 진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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