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
사람을 깨우는데 경전이 필요 없다.
어느 자비로운 사람이 굵은 경전을 말아 몽둥이처럼 들고, 머리통을 때려준다면 잠에서 깨어날지도
모른다.
등불을 밝혀라. 그 불을 밖에서 찾는다면, 반드시 그림자가 남을 것이니, 네 안에 불을 밝혀라.
그러면 당신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남지않고 소멸될 것이며, 바로 당신이 등불,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그제서야, 경전을 읽고, 자신을 증명할 수 있고, 부처님을 증명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경전을 건드리지 마라, 그때까지 전혀 쓸모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화장지로 쓰기에도 너무 뻣뻣하니, 시도조차 하지 않기를 바란다.
꿈에서 부처님을 보면 부처님을 죽이고, 선사를 보면 선사를 죽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깨어 있는 자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이 단어들을 이해했다고, 깨어났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착각하는 사람들은, 단지 깨달음을 이해한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그런 설법을 듣도록 권하지도 마라,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가 먼저 일어나야 한다!
잠에 취한 사람의 말은, 아무리 좋은 이야기일지라도, 잠꼬대를 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지 모르지만,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면 상상력으로 깨달음의
책을 쓰지 마라.
왜냐하면 그런 짓을 하게되면, 많은 후대의 사람들이 길을 잃고 헤매게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확인되지 않은 엉뚱한 책들 덕분에, 젊은 인생을 허비하고, 먼 길을 돌아왔어야만 했다.
증득해서 경험되지 않은 쓰레기로도 못쓰는 책들은, 이 책, 저 책 등에서 편집해서 편찬된,
불교의 요약본은 이미 서점에 먼지와 더불어 쌓여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며,
경전이나 선사어록등에 스스로의 망상을 붙여서, 후대를 위한 자비로운 옛 선사의 본질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실이 아닌 자신만의 견해와 생각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설령 좋은 취지에서 라도, 바른 안목이 없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만약 어떤이가 잘못된 안경을 쓰고서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도울 수 없고, 멈추지 않고 고집을 부리면서, 다른사람들을 안내를 한다면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이 겪은 간접 경험으로는 본인의 생사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자신 스스로를 먼저 증명하고, 자신의 언어로 얘기할 수 있어야한다.
결국, 생사문제에서는, 그 것이 부처님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 잘못된 안경을 벗은 직 후에는 한 단어도 쓸 수 없을 것이다.
오랜동안을 엉뚱한 안경을 쓴 후유증으로,몇 마디 말을 적어보려다가 한동안은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정리를 할 수도, 정리되어 질 수도 없는 삼라만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한 단어로 된 “일자경”이라는 경전이 있고, 그 위로는 글자 하나 없는 “무자경”이라는
경전이 있다.
진짜 경전을 읽고 싶거나, 쓰고 싶다면, 미소만 지으면 된다. 그 저, 그 뿐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