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진리를 말할 순 없으나, 쓰인 뜻을 살펴보면 비슷한 점이 있다.

영어의 "way"는 동양과 서양에서, 방법이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이러한 이유로 노자의 “”역시 이런 이유에서 일맥상통 한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내가 말할 수 없는 이 일에, 이름을 붙이면, 그것이 되지 않을 테니, 그냥 “도”라고 하자"고 했다.


” 즉, 중국어로 “타오”의 이름은 의미가 없지만, 타오의 사전적 의미는 이다.

그래서 그것은 아직 진리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무엇인가를 찾는 방법의 의미와 맞아 떨어진다 하겠다.


그러나 노자가 말한 길은 우리가 아는 그 길이 아니고, 사실 그런 방법은 없다

따라서 단어의 뜻만을 쫓아,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이라는 것을 자기만의 해석으로 그릇되게 깨달음으로 가는 그들의 길을 찾아 헤맨다. 


나 역시 수행이라는 명분으로 그런 잘못을 오랫동안 저지른 사람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이 이해하는 방법으로 그런 수행법들을 찾아, 수행하지만, 그 길은 길이 아니다. 진정한 도는 당신이 한 걸음 떼기도 전에 있다.


부처와 중생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 있어서, 이것을 떠나서 저것은 있을 수없다.

길이 있다고 해도, 또는 길이 없다고 해도, 우리는 길위에 있는 것이고, 불교의 사성제나 팔정도를 모른다해도, 둘이 될 수없는 이것이 확인된다면, 세상의 어디에서도 부처를 만나고 도를 볼것이다.



즉 선과 악, 진실과 거짓뿐만 아니라, 전혀 다르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동전의 앞과 뒤처럼 붙어있어, 다른 듯하나, 하나 인 것이다.


만약 동전의 앞면이나 뒷면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한 면을 깎아낸다 하더라도, 결코, 그 면을 없앨 수는 없다.


세상은 동전의 양면처럼 되어 있고. 그 것이 부처님이 살아 생전, 설법하신 연기법의 요점이다..이것과 저것은 다르지만, 그것들은 서로에 의지한다.


없다고 하는 것도, 모른 다고. 하는 것도, 그에 반하는 무언가가 있기에 성립한다. 

다시말해 길이 있다, 없다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길”하는 여기에 하나라고도 할 수없는 하나됨이 있고, 이 것이 “길”이다.


세상의 모든 이름을 붙일 수있는 모든 것,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신성한 것부터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것들 까지 포함한 모든 것들은 서로에게 의지해 있다.


삶도 죽음에 의존하기 때문에 한쪽을 오롯이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동전의 주인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의 본질을 보거나, 당신이 이미 동전의 주인이라는 부처님의 말을 믿고 스스로 증명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말과 글이 진실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말과 글을 사용해서, 이 하나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법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오직 글로만 진리를 논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을 찾기 위해 삽을 들고 산으로 갈 것이다.


선의 본뜻은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숨소리나 마음을 관찰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뿐인 진리에 참여하는 길일 뿐이다.


이미 길위에 있으면서도 길을 찾고 있다면, 길위에서 길을 잃는, 황당한 일을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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