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
우리는 스스로 무언가를 성취했다고 생각하기에, 성공하면 즐거워하고 실패하면 좌절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예를 들면, 농부가 씨를 뿌려 파종을 하고, 그 농작물이 잘 자라서 농부에게 이득이 된다.
그러나 어느 해에는 흉년이 들어 농부를 좌절하게 한다.
이 같은 일에 대한 결과를 어떻게 해석 할 수 있는가? 날씨를 탓을 할 수도 있고 씨종의 탓을
할 수도 있다.
또 농부 스스로가 자신에게 게으름을 자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한사람의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세상 만물과 연결되어 있는 세상모든 것의 일이기 때문이다.
작은 의미로는 그 파종을 했던 씨앗들의 일생이고, 넓은 의미로 본다면,
자연이 생물에게 주는, 기후 조건는 비단 농부의 개인적인 성공과 실패를 넘어,
세상 모든 만물이 자라게도 하고 죽게도 한다,
사람들은 "나"라는 것을 맨 앞에 내세우는 이기적이 자만심이 스스로를 괴롭힌다,
하지만 전체적인 의미에서 그 농부는 하나의 씨앗과 다르지않다.
그 어린 씨앗도 그 것들을 있게 한, 모종이 있었고, 어느 농부의 손에 의해 팔리게 되고 또
그것들은 다른 농부에 의해서 땅속에 뿌리 내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 씨앗들 중에는 병충해에 시달려 죽는 씨앗도 있을 것이고 건강하게 자란 씨앗도 있었을 것이다.
한 농부의 일생과 그 씨앗의 일생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또는 내가 이루었고, 해냈다는 것은 결국 자만이다.
그 농부는 나에게 이렇게 반론할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났고, 열심히 일 했다"
그러면 나는 한 가지 질문을 그 농부에게 할 것이다.
매일 아침에 당신을 눈을뜨게 허락한 것은 무엇이냐고, 그 어떤 것 하늘, 신, 운명, 당신이 믿는
무엇이 됐든 간에 그것들이 허락없이는, 당신의 내일 아침을 장담할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당신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신을 열심히 할 수있게 한 조건들은
당신 스스로 할 수있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우리는 우리의 생명에 결국 관여할 수 있는가?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 중에 누군가가
내일 갑작스런 사고나 병으로 죽는다해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은 일 일것이다.
우리는 한방울의 물을 입으로 가져갈 수는 있지만 그 물을 소화 시키는 일에 관여 할 수 없다.
그 한방울의 물을 입에까지 안전하게 가져갈 수있을 지 조차도 하늘의 뜻이다.
"내가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 자체가 자만이다.
어느 종교에서는 “매사에 감사하라”라고 한다, 자만의 반대되는 행동, 그렇게 하는 것이
자만하는 쪽 보다는 신의 마음에 통할 수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솔직한 얘기지만, 우리 주의에서 게으르거나, 착하지 않아도 성공하는 사람들을 많이본다,
그것은 그들에게 다만, 그런 조건이 부여 되었을 뿐이고, 그런 일이 벌어진 것 뿐이다,
우린 어릴때 부터 사람의 관점에서 만 바라본, 상당한 부분의 왜곡된 교육을 받아온 부작용일 것이다.
그렇기에 남의 성공을 보면서 스스로를 비판하고, 몰아세워 세월을 보네다가 우연한 조건이
된 어느날, 그 작은 성공을 내세워 자랑하고 또 자만하는 세월을 보내다 생을 마감할 것이다.
우리도 자연에서 왔고 자연의 일부이며, 본래의 성품은 자연임을 말로만 보고, 듣고,
이해하는 듯, 못하는 듯, 때로는 자연을 적으로 대하며, 인간들만의 암묵적 동의아래
자연을 회손하며 살아가고 있다.
성공한 씨앗, 실패한 씨앗, 어떤의미가 있는가?
씨앗이 우연한 조건 없이는 햇빛을 받을 수 없고, 한 방울의 물도 받을 수없듯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이다.
아직도 성공, 실패에 웃고, 울고, 하는 중이라면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