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일까?

 




이 것은 마치 하늘과 같이 늘 나를 감싸고, 땅과 같이 나를 늘 받쳐준다.

또 이 것은 우주와 같이 넓지만, 어느 때는 바늘구멍 보다 좁다. 


이 것은 빛과 같이 밝은 면도 있고, 칠흙과 같이 어두운 면도 있다. 

어느 때는 희망을 주고, 또 어느 때는 좌절을 준다.


이것은 온화 할 뿐만 아니라, 인정 사정없이 화를 내기도 한다. 

또 이것은 사랑스럽기도 하고, 어느 때는 추악 하기도 하다


어느 때는 알 것같기도 하고, 어느 때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이 것은 우리와 늘 함께 하지만, 우리는 늘 이 것을 외면한다.


이 것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만 모아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것 들이고, 반대로 부정적인 부분만

모아서 보면, 우리가 싫어하는 것 들이다.


위의 글에서 연상 되는 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알듯 해서, 잘 아는 것들과 닮아 있고, 조금만

생각해도 여러 가지 이름들이 연상 된다.


왜냐하면 세상에 이름이 있고 형태가 있는 모든 것들은 그와 짝하는 것이 반드시 있다. 

그것은 불교의 음, 양과 같다. 어릴때 나는 음과 양에 대한 혼란이 있었다, 

그것은 아직 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애초에 어째서 절대권을 갖은 자가 그 것을 용납 했는가? 

그것은 긴말 필요없이 선과 악을 보면 편가르기는 더욱 뚜렷하다, 


상반대는 일들을 생각으로만 유추하는자들은 자신의 뜻과 반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척하고, 더 노력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간다고, 지극히 자기 중심적 생각을 하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갈 것이고, 그 저 무언가, 절대자를 맹신하는

이들은 우리가 모르는 하늘만이 아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덮어버린다.


예전의 나를 포함한, 일반적인 사고를 하는 경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당연 한듯이, 상반되는

모든 것들의 편을 가르고, 오로지 한 편의 입장에서서, 다른 한 편을 배척하는 나쁜 버릇이있다. 


세상에는 순도 100%의 것은 없다, 신 조차도 완벽하지 않다, 선과 악,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종교마다 표현의 방식에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부처는 이 것들을 좋음과 나쁨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 것을 “연기”한다고 한다, 우리의 생각은 사무라이의 날카로운 검처럼, 무엇이든 나타나면

순식간에 두동강을 내어, 둘로 나누어 버린다. 

부처님이 설하신 연기법은 이 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는, 서로 의지하고 있는 공생의 관계인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지는 “공”을 설하신 것이다.


불과 몇 년전에 타계하신 노 거사님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허공에 가로로 있는 실과 세로로
있는 실을 엮어서, 우리가 쓰는 수건이 되었는데, 다시 그 가로의 실과 세로의 실들을 풀어서

빼면 그 수건 이라는 것은 어디 갔는가?” 하고 물으셨다.. 


이 질문 같지도 않은 노인네의 질문에 한마디만해도, 틀렸다, 입술만 띄어도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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