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피의 교훈 1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 새겨진 말이다. 이 말을 희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인용해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또 독일의 문호 괴테는 그의 측근에게 “나는 나 자신을 모른다”고 하였다는데, 지금의 많은 사람들은
이런 근본적인 질문도 스스로에게 해보지 못한채 무언가를 쫓고 또 무언가에게 쫓기며 하루 하루를
살거나 이 일을 훗 날 언젠가로 미루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나” 라는 것이 무엇인가? 이 문제는 첫번째 문제이자 마지막 문제이고, 이 문제 안에 답도있다.
오랜세월을 견뎌온 상위의 종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믿음 또는 사랑이다, 각 각의 종교의 신
또는 매개자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없다면 첫발을 내딛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랑과 믿음, 이 두가지는 밖으로 부터 만들어져 나에게로 주입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밖에
신이나 매개자을 만나거나 생기기 이전에 이 “나”라는 토대가 있어야지만, 그 위에 세상이라는 배경의 연극무대를 짓고, 그 후에서야 비로소,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 부합되는 것들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세상이라는 그림을 뒷받침 해주는 하얀 캔버스처럼 보잘 것 없는 듯 해도, 가장 중요하고, 가장 중요한듯, 해도 보잘 것 없는 듯, 느껴지는 것이 스스로를 쉽게 찾지 못하는 장막과도 같다.
인류는 원했던 원치 않았던 종교와 과학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우리에게 큰 힌트였던 “너 자신을 알라”에서 답을 찾았다면 모든 문제는 종교나 과학의 도움 없이
깨끗이 해결 되었을 것이다.
지극히 나의 소견이지만, 과학과 종교는 많이 닮아 있으면서도 동전의 앞, 뒷면처럼 서로 의지하고 있다.
내게 과학은 증명을 모티브로 하는 종교이다, 하지만 언제나 실패한다, 왜냐하면 시대에 따라서 항상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한세기를 굴림해 오던 지식은 거짓이 된다.
그 당시에는 지동설이 맞았다 하지만 천동설이 증명되는 순간, 지금까지 믿어왔던 그 얘기는 미신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들은 그 것을 미신이라 얘기하지 않고, 다만 전 과정으로 인해서 또 다른 지식을 낳았다고
미화해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또 새로운 생각의 알을 낳고 부화시키고 한 시대를 즐긴다,
만약 진리가 그 들처럼 생각하는 것 처럼, 소수의 똑똑한 사람들이 연구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이라면
대학의 연구실에서 부처님이 나와야하고, 세상의 대한 해답이 나와야한다.
과학을 폄하 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요즈음 과학을 잣대로 깨달음을 스스로 증명하지 않고 그 것에
대하여 생각만 하는 것은 결국 망상을 하는 것이다.
또 한, 그 들의 총명한 머리로 스스로 체득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머리 속에서만 생각으로만 한 망상들이 해박한 지식과 화려한 그들의 언변이 책으로 출간되어, 그 들의 지식을 믿는 추종자들에게 전파되면,
이 처럼 단순히 나를 깨닫는 기회를 상실하게 하는 것은 과학이라는 훌륭한 도구가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우리의 본질을 찾는 출구을 박살내는 위험한 무기, 그 이상으로 다가 올 수 있다.
이 모든 문제의 답은 오직 “너 자신을 알라” 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