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피의 교훈-2
바로 가리키는 선의 가르침은 설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이 더 많아지고, 상식의 폭도 커진 현대에서는
다채로운 예를들어 고정관념을 녹여주어 나를 바로 보게한다.
하지만 선의 전통적인 방식이 얼핏 보기에는 과학처럼 정교해 보이거나, 똑똑해 보이지는 않지만
언제나 한결 같고 우직하게도 이것만을 가르키고 있어, 간단하고 단순해서, 오히려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 조차도 생각의 방해이다.
아이에게 왜 내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씻고, 준비해야 학교에 갈 수 있는지를
길게 설명해서 이해 시키는 것보다, 내일 아침에 그냥 그 의 궁둥이를 걷어 차 주는 것이
더 직접적인 방법이고 그것이 선의 방식이다.
하지만 이 좋은 방법조차도 선생과 제자 둘사이에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 할 것이고
엉덩이를 시원하게 걷어차 줄 친절한 스승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일반인들이 스스로에게 어렵다고, 믿는 과학을 맹신하는 이유와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같다, 우리는 생각의 힘을 믿고, 그 믿음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학계의 대전환을 있게한 양자역학을 뒷받침 해준 실험이 이중 슬릿 실험은
실험대상에 파동성과 입자성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 당시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기존의 물리학의 이론을 흔들어 놓고,
이를 대처할 양자역학 탄생의 기초가 된다.
이해를 돕기위해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실험을 하는 자가 의도하는대로 그 실험대상이
그렇게 보여진다는 말이다.
빛을 실험하면서, 그 것의 성질을 파동이라고, 염두해서 조건을 만들어 놓고,
실험하면 결과가 파동으로 나타났으며, 다시 같은 빛을 입자로 염두해서 조건을 조성하고,
실험하면 입자로 보여졌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빛의 본질이 물의 물결처럼 파동이라 주장하는 사람들과, 작은 알갱이 즉 입자들
이라고 보는 사람들, 두 그룹으로 양분되어 80년간의 논쟁을 종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실험의 결과는, “모든 있다는 것들은 없는 것이고, 모든 없다는 것들은 있는 것이다.
반야심경 중에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위의 실험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설명이 간단하고 명료하다.
시간과 공간의 맹점으로, 실제로는 없는 것이지만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주의 별중에서 우리의 육안으로 반짝이는 별일지라도, 멀리 떨어져있는
지구에서 본다면, 현재 그 별의 존재여부를 알수 없는 것과 같다.
그 별이 이미 수명을 다해 빛을 잃었더라도 불빛이 꺼진 직후의 그 마지막 빛이 지구에 까지
도달하는데 속도의 최고 단위인 광속으로 1초에 30만km 온다하더라도,
그 별이 있던 곳에서 우리의 지구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리는 그 별이 존재한다 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 할 수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것은 빛의 성질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이 그렇다는 것이다.
몸도 완성되었다가,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고, 없었던 것이 시간의 흐름에 나왔다가 세상모든 것이
그렇듯이 사라지기 때문에 있는 듯 하지만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이다.
생각할 필요도 없는 쉬운 말이나, 생각하면 어려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하지 않은 유일한 것, 그 것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문득 깨어나 보면, 부처님의 말씀처럼 이 모두가 꿈인데, 꿈속에서 경전의 말이 꿈속에서
과학이 증명한 사실에 들어 맞는다고, 꿈에서 다시 꿈을 꾼 얘기를 하고 있어,
이 것 또한 옳은 비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네 자신을 알라” 의 간결한 가르침에도 눈못뜨는 것은, 생각이 제일 큰 적이라 할 수있다.
나는 지금 당신에게 말하고 있다! 거기, 너 바로 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