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할 뿐, 오직 모를 뿐.

 



오직 할 , 오직 모를 , 지금은 고인이 된 한국의 선사가 세계를 다니며 했던, 두마디의 말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선은 간단 명료하다, 너무 간단해서, 오히려 해석이 더 복잡하다.

한 글자의 대한 설명이 팔만사천의 경전에 달한다


대다수의 경전의 시작은 “여시아문”.즉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 로 시작하며,

그 후의 글은 부처님의 제자들의 자비심으로 수고로움이 덧붙여 졌다. 

경전의 시작을 이와같이 들었다고 한 것은, 경전이 부처님이 살아 생전,

직접 집필하신 것이 아니고, 부처님 사후에 제자들의 기억에 의해서 옮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던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에서 이미 설법은 났다, 

부처님의 말씀이전부터 세상의 모든 것이 법문을 하고 있었고, 책의 첫페이지를 펴기도 전에

모든 할 말은 끝났다. 


옛 선사들은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잉어처럼, 모든 것을 쓸어 삼킬 것 같은 파도처럼,

지금 살아있는 것이 기에 설법을 죽은 문자로 남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설명하지 못할 이 일을 가리키고 있다.   


물에 빠져 도움을 요청하는 모양이 경망 스럽다해도, 본질을 간파한 사람이라면 그 모양에

개의치 않고 바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그 행동의 핵심은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본질을 주시하고 있다면 세상의 조그만 움직임에도 깨어날 것이다.

그 후에는 이 오직 모를 것을 쓸 뿐이고, 나에게 인연이 되어 주어진 일에 하면 그뿐이다.


우리는 항상 걱정을 하면서 대부분의 인생을 살기때문에, 그야말로, 인연대로 사는 것, 

걱정안하는 삶을 살아 본적도 없으면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걱정을 안한다고, 일도 안하려고, 아무것도 하지않는 바보나 패배자처럼 사는 것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은 유기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가만히 있고 싶다고,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고, 또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자동으로 허우적대는 생존본능을 포함한, 모든 생리 현상까지도

일상의 거의 모든 일들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숨쉬는 것 조차 내가 한다는 생각없이, 내가 숨을 잘 쉬고 있는가 확인 하지않고,

몸에 맡겨 두면 자연적으로 돌아간다,  

오히려 간섭하면, 그때부터 자연스럽지 않고, 더 불편해진다.


여러번 얘기하지만, 성공, 실패도 내가 혼자 독립적으로 할 수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살라미 한조각을 입에 가져가 내몸에 넣을 수있을 뿐, 그 후 소화하는 것은 

내가 전혀 관여할 수없는 이치와 같다.


예를 들면,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차의 모든 부품이 돌아가는 것을 걱정하는 것과 같다.

오직 운전만, 아니 운전도 몸에 맡겨두고, 참견하지않고 편안하게 앉아서 오직 전방만, 주시한다면,

말 그대로, 모든 것은 저절로 이루어 질 것이고,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그것이 오직 하는 것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깊은 바다에 빠진다면, 당신이 하지 않으려 해도 자연적으로

손과 발이 저절로 법문을 할것이다, 


영아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수영을 한다고 한다, 그들처럼 오직, 오직 모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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