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가 되고 싶어?




사람들이 하는 많은 질문중에 하나는 우리의 인생이 마치 꿈과 같다면, 어떻게 해서 이 꿈이나 영화에

빠져들었나 하는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가 밝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상 그 누구도 탄생부터 지금에 이르는 모든 기억을 하는 사람은 없다.

보통은 아주 어린시절, 어느 순간에 나를 인지함으로서, 마치 꿈에서 처럼 갑자기 어떤 상황에 던져졌고,

그 이후로 상황에 맞게 살아가고 있다.


간접적으로 라도, 우리가 이 영화에 중독되기 직전에 나의 상황을 보고싶다면, 아기의 에서 볼 수있다.

그때문에 그들의 눈을 보면서 밝고, 맑음을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그래서 수행의 방법 중에 시간을 거슬러 아기때로 돌아간다는 수행법들이 난무하는 것 같다.

자아가 형성되기 이전의 아이들은 나와 남이 없기때문에, 내가 지켜야 할 것도 없다. 

두려움도 없어서, 눈으로 입가에 손가락이든 무엇이든 오면 선입견없이 입을 열고 받아들인다.


모든 것을 그냥 할 뿐이다, 거기에는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표현이 더 가까울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수행으로 어른이 아기의 상태 혹은, 더 나아가서 탄생이전의 태아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은 아기의 상태를 오랜기간 연습해서, 그렇게 비슷하게 하겠다는 말 일 것이다.


이 말은 아기처럼 순수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아기를 흉내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아기였던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다시 아기로 돌아가려고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이다. 

부처가 다시 부처가 되려고 노력하는 짓이 얼마나 웃기는 짓인가?


만약 어른이 아기가 되는 수행에 성공해서, 기저귀를 입고 다녀야 모든 것으로 부터 자유가 되는가? 


우리 모두는 아기였다,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는가? 또 그때와 지금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를 찾는다면, 고된 수행으로 아기가 되는 것 보다 더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부처 스스로가 부처가 된다면, 그 권위가 또 한번 당신을 희롱할 것이고, 또 그 자리를 지키려는

수행은 평생해도 모자를 것이다.


수행이라는 것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전단지일 뿐이다, 

또 수행이란 말의 의미는 배운것을 잘 지켜 보존한다는 의미가 있다.


예를 들면, 내 몸이나 내 소유의 자동차가 있으니, 그 것을 쓰는 날까지 잘 닦고 고장나면, 수리하고

부품을 교체하며 잘 돌보는 것이다.


이와같이 수행의 목적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혹은 못난 나에서, 잘난 나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본질을 먼저 확인한 이 후에 살아가는 모든 과정이 수행이라면 그 것이 수행이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시작부터 방향이 틀렸다. 

우리가 어떤 수행을 해도 아이가 될수 없다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그렇다면 부처는 무엇이고, 깨달음은 무엇인가?


우리가 부처였고 우리가 바로 그 아기였다, 다만, 시간과 공간만 초월하면 지금이대로 우리가 그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은 지금 이것뿐인 이것을, 이대로 망상없이 살아가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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