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거품
빗물이 젖은 땅의 물웅덩이에 떨어지면서 물거품들이 일어난다.
어떤 것들은 크고, 어떤 것들은 작고 또 어떤 것들은 오래 머물고, 또 어떤 것들은 순간 사라진다.
어느 물거품은 빛을 받아 무지개빛이 보이기도 하고, 어느 물거품은 생기자 마자 흙탕물에 섞어 버린다.
어느 것이 좋은 물거품이고, 또 어느 것이 나쁜 물거품인가?
어느 물거품이 가치있다 하고, 또 어느 물거품이 가치없다 하는 것인가?
큰 물거품에 의지해 작은 물거품들은 모여있기도 하고 작은 물거품들만 모여있기도 하다.
그 중에 어느 물거품이 “나는 특별해서 너희들과는 달라!” 라고 잘난척을 하고 또 어느 것이
“나는 보잘 것 없어” 라고 자학을 할 것인가?
어떤 물거품이 다른 물거품에게 해를 끼칠수 있겠으며, 또 어느 물거품이 다른 물거품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
또 어떤 빗물이 “내가 물거품을 만들어 냈다” 라고 할 것이며, 어떤 빗물이 “내가 물거품을 터트렸다"
할 것인가?
인간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본래 이름이 없다.
비, 물, 물방울, 거품, 어느 것이 다른가? 또 비가 스스로 나는 비라고 했는가?
물이 물이라고 스스로를 이름 지었는가?
모두 우리가 지었다, 여러가지로 이름짓고 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이름을 짓고, 나누어
놓은 결과 우리 자신 마저도 본질을 잃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고정관념에 노예가 되어, 인생에서 단 한번도 돌이켜 보지않고 “난 달라, 난 나야”라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
작은 물거품하나도 스스로 만들어 질 수 없고, 신을 포함한 이 세상 어떤 것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오직 하나 그 하나라는 말도 붙일 수 없는 이 진실 하나뿐인 이 것만이 스스로 완전하다.
그런데도 마치 물거품같은 내 몸을 나라고 하며, 그 욕심을 채우며 평생을 살아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는가?
물거품의 입장에서 누군가가 마셨던, 그 미네랄 워터 였을 때가 나인가?
그 의 몸에서 소변으로 배출된 그 물이 나인가? 또 흐르고 흘러서 바다로 간 바닷물이 나인가?
아니면 그 것을 구름위로 끌어 올려준 에너지가 나인가? 그것도 아니면 수증기가 나인가?
스스로 어떠한 세상의 것에 협조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몰라도 그렇게 살아 갈 수없다면 지금이라도
망상의 모든 이름을 잊고 진정한 스스로를 보라.
이름은 우리가 소통하기 위한 도구였다 하지만 문자에 중독된 나머지 이름과 생각만으로도 고뇌에
빠지게된다.
이 말을 확인 해보고 싶다면, 지금 당신과 관계가 좋지않은 사람의 이름들을 떠올려보자.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변화가 감지될 것이다.
내가 직접 확인할 길은 없지만, 누군가의 연구의 의해 알려진 것이 우리의 몸에 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라고 한다.
우리의 몸을 분석해서 글로 옮기자면 신체에서 물의 비중이 70%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목이 말라 죽기직전의 사람에게는 70%도 아니고, 80%도 아니고, 90%도 아닌,
물 한모금이 100%, 생명력 그 자체가 된다.
지금 이시간 어딘가에서는 그 한방울의 물이 우리의 생과 사를 가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