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리를 내라.

 



우리는 “출처” 라는 단어를 무한 신뢰한다, 그 말은 내가 누구의 책에서 인용한 말이란 의미이고, 그 것 사람이 잘 알려지고, 똑똑한 사람이라면, 그의 말의 대한 신뢰의 힘은 듣는 자를 압도한다.


선사들이 습관처럼 하는 말 중에는 “나의 말에 속지마라” 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모든 말에는 진실이 없고, 그 말은 듣는 시대상황에 따라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진실이 아닌 것은 모두 거짓이며, 모든 말이 그렇다,

부처님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예외없이 그렇다. 

모든 말은 그 당시, 그와 함께 할 때, 그 때만 유효한 것이다.


누군가가 부처님의 말씀을 그냥 듣고 외우고, 한낱 지식으로 잘난척 하는데 활용 한다면, 그 말은 독이 되어 그 말을 전해 들은, 많은 사람을 눈 멀고 귀 먹게 할 것이다.


우리는 모양에 너무 주눅들어 있다, 서점에서 책이 앞표지가 화려하고, 두껍고 난해한 단어가 많이 쓰여있으며, 게다가 저자가 유명한 사람이고, 첫장에 유명인의 추천의 글 등이 있으면 “훌륭한 책”이라고 판단하고, 읽어보기도 전에 그 책을 숭배한다.


간혹, 그 들의 삶의 여정을 보면, 결국 자신의 생각에 사로 잡혀, 정신적인 장애나 불행하게 끝이 나는 것을 보면,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의 고뇌가 크게 다름이 없는데도, 여전히 그 들의 화려한 말이나 글을 마치 자기의 말처럼 인용하고, 자신의 말을 덧붙여서 앎의 권력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나도 어릴 때는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며, 그 들을 닮아가려 했다, 그러더가 문득 “그 들은 정말 나와 다른가?” 라는 자각과 함께 내가 하려는 짓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임을 알았다.


그저 어느 한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그것도 내가 본적도 없고, 심지어는 500년 아니, 1000년전의 사람의 생각이 책으로 남겨져 단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스스로 확인도 하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다.


그 사람들의 주장이 내가 가보지 못한 우주처럼, 보편적 진실이라 할지라도, 세계를 이끄는 소수의 의견을 반영한 맹목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다수의 일원이 되어, 그냥 참고만 할 뿐이다.


대부분의 우리는 극소수만 안다는 핵심적인 지식없이도, 어느 누구와 크게 다름없이 일생을 살아간다, 또 하늘과 신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자연적으로 그 것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세상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이 진리를 찾는 것에 도움이 된다면 몰라도, 오히려 방해만 된다면 지금까지의 배운 앎으로 부터 해방이 필요하지 않은가?


어릴 때 농담으로,“많이 먹으면 많이 싸고, 적게 먹으면 적게 싼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

물론 개인적인 삶의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이 알면 걱정할 것이 많아져서 그 만큼 피곤할 뿐이고, 적게 알면 그만큼 덜 피곤하다. 


선사들은 남의 말을, 남이 배설한 에 비유한다,

내 것도 충분한데 왜 남의 것까지 참견하며 더러운 짓을 하는 가?


그런데도,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마치 깨달음의 모델처럼 상징적으로 드러나있어 부처님 사 후, 2500년 동안 법이 묻히지 않고 깨달음의 단초가 되어 오래 세월을 전해온 장점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가 가리키고 있는 진리가 아니라, 그 분의 자체를 숭상한 나머지 오직 그의 깨달음만이 진리라고 착각하는 부작용이 심각하다.


부처님은 스스로 단 한권의 불교경전을 남기신 적이 없고, 돌아가실 때는 나는 법을 한마디도 전한 적이 없다고 하셨다.


부처님의 빛나는 업적은 깨달음의 발견이다, 발명이 아니다.

Popular posts from this blog

This is Zen - 2021.06.19 (Part 1)

Who Am I ?

After waking up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