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위의 삐에로
이번에는 조금 복잡한 얘기를 해보자, 선에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이런 식의 말들 이 많다.
이유는 말에 집착해서 생각을 일으키는 우리의 망상을 어느 곳에도 붙어있지 못하게 하고, 바로 보고
멈추게 하려는 역대 선사들의 배려이다.
우리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안된다,
보통 중간를 얘기할 때, 좌측 우측이 아닌 가운데, 위쪽 아래쪽의 가운데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불교의 중도를 영어로 해석할 때 “Midway”로 해석하면 완전히 잘못된 해석이 된다.
선의 중도는 가운데의 의미가 아닌 그 둘을 초월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머리 속에는 그 것에 대한
예가 없다.
나를 이끌어 주신 분은 이것을, 자전거에 비유한다, 자전거를 배울 때 좌, 우측으로 어느쪽으로 치우치면 넘어지기 때문에 자전거를 가르칠 때, 자전거의 방향이 왼쪽으로 기우는 듯 하면 오른쪽으로 가라고 외치지만 그 때의 오른쪽은 우리가 아는 오른쪽의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른쪽으로 기운다면 반대로 왼쪽이라고 외칠 것이기 때문이다.
자전거가 똑바로 가기 위해서는 오른쪽도, 왼쪽도 아닌 그 중심이 필요하고, 그 중심은 오른쪽과 왼쪽을 포함하기도 하고 그 둘을 포함하지 않기도 하다.
또 그 것은 삐에로가 공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앞으로 가기 위해서 뒤로 가야하고, 뒤로 가기 위해선, 앞으로 가야한다..
또 좌측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우측으로 가야하고, 반대로 우측으로 가기 위해선 좌측으로 가야한다.
이렇듯 사방팔방 위아래 말에 따라가다 보면은 정신이 없다,
또 머리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방법을 쓴다.
그러나 결국에는 좌측, 우측, 위,아래, 앞, 뒤 등으로 갔던 마음은 결국 변하지 않는 그 중심에서 만나게 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자전거를 탈 때나, 삐에로가 공 위를 걸을 때나, 여러 갈래 방향에만
따라가지 않는 다면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중국의 유명한 방거사는 아내와 아들과 딸까지 모두 깨달음을 얻었는데, 방거사는 깨닫고 난 후에, “어렵고도 어렵다” 라고 했고 그 의 아내는 “쉽고도 쉽다.” 라고 했으며 그 들의 딸은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 라고 했다고 한다.
어려울 때도 그 말에 따라가지 않고, 쉬울 때도 그 말에 따라가지 않고, 어렵지도, 쉽지도 않다는
말에도 따라가지 않는다면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이 것은 너무 쉽다, 너무 쉽기 때문에 어렵다.
삐에로도 “이 것” 위에 있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이 것”위에 있고, 그 말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이 것” 위에 있으니 항상 이 것을 타고 있으면서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