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인류는 현재까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간단한 질문에 대한 뚜렷한 입장표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눈뜨면 직장에 나가 일하기 바쁜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연구하며, 머리쓰는 것이 낙이자, 직업인 철학자들 과학자들 마저도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마나, 몇몇의 사람들만이 변증법적 유물론적 관점에서, “모든 사물은 변화하고 발전한다,” 라는 명제아래 닭이 원래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그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는 등의 여러가지 형이상학적인 추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 절대론을 무너뜨렸지만 생각만을 나열 할뿐,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또한, 과학적 해석에 따르면, 닭이 달걀을 낳고, 다시 달걀이 닭이 되는 과정은 끝없이 순환되고, 현재까지 가장 앞선 과학연구에 따르면 달걀이 먼저라고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한다.


달에 우주선도 쏘아 보낼 수 있는 인간들의 두뇌로도 해결할 수 없는 너무 간단한 문제들이 많다.

다만 그 것에 의문을 갖는 질문이 다를 뿐이지, “진리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진리를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세상의 방식도 맞지않다,

이것은 마치 머리와 다리를 따로 나눠놓고 다시 억지로 맞추어 보려는 시도와 같다. 


세상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고, 그 길들은 결국 같은 길로 통한다. 바닷물의 맛은 독일에서 맛보든지, 한국에서 맛보든지, 세계 어디에서 맛보든지 모두 하나의 같은 맛이다.


다시말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의 문제 이전에 “당신은 누구인가?” 나와 닭, 그리고 달걀은 서로 연결 되어있다.


닭이라는 모양에 또 달걀이라는 모양, 그리고 “나”라는 모양 그 중 어느 하나의 모양에 빠진다면, 모두 다 따로 있다.


하지만 그 모양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닭의 모형과 달걀의 모형, 그리고 나를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인형, 이 세가지 모형과 그 세가지 모형을 카메라로 찍은 한장의 사진이 있다고 하자.


그 사진에는 그 모형들이 있는 뒷 배경까지도 한장에 사진안에 경계없이 모두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을 나누어 놓은 각각의 모형을 하나씩을 손으로 집어 들어보면 구분이 분명하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경계없이 평면에 담겨 있는 한장의 사진 보다, 입체적인 모형이 더욱 실제

가깝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 다시말하면, 뒷배경 없는 온전히 나 혼자 있을 수가 없다, 

덩그런 벽이 배경이 되든지 아니면, 불꺼진 방의 어둠의 배경이라도 있어야 한다.


배경중에는 항상 보는 ""가 있어야하고, "관찰자" 즉, 내가 없다면 관찰대상물들 즉, 닭이나 달걀도

혼자 존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모든 질문의 첫 시작에는 항상 내가 있기 때문에, 그 질문들을 뒤쫓는 것은, 질문에 질문을

더 할뿐 결론은 없는 것이다.


선에는 이런말이 있다, “는 던져지는 흙덩어리를 쫓는다, 하지만 사자는 흙덩어리를 던지는 자를 쫓는다.”


화려한 말장난을 쫓아 인생을 허비할 것인가? 아니면, 진실된 “이것” 하나를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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