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보여줘
사랑에 빠지면 온 세상이 사랑으로 보인다고도 하고, 무엇을 해도 사랑하는 사람만 떠오른 다고 한다.
온통 이 것 뿐이면 이 것이라고 하는 것의 존재와 빛깔은 없어지게 된다, 어느 선사의 말을 예를 들면, 세상이 온통 파란색이면 파란색 이란 말은 무의미해 진다는 말이다.
거기에 무슨 말이나 조건을 더 하겠는가? 온통 사랑이라면 어떤 사랑의 말도 필요가 없다.
사랑은 그냥 하는 것이다, 무엇때문에 이런 것이 없다,
앞에서 내가 언급했던 엘비스의 노래처럼 사랑에 빠지면 그냥 바보가 된다.
확신 하건데, 누구든 인생에서 이런 바보가 된 사랑을 경험했던지, 아니면 아직 안해봤지만, 공감하거나, 갈망하는 사람이 라면 언제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이유는 다소 충격적일 수도 있겠지만, 사랑은 상대방에서 부터 온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었던 것이 그녀 혹은 그 사람으로 인해서 촉발된 것이다. 그 것이 사랑이다.
깨달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것은 정석이 없고, 시도 때도 없다, 또 어느 순간 다가 왔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것은 모든 형태로 온다, 이게 사랑인가 싶을 정도로 오기도 한다.
그러나 깨달음이 평소 상상하거나, 꿈에서 처럼 오기를 기다린다면, 또는 어떤 스토리나 특정한 사건의 인연으로 촉발되기를, 바란다면 단언하건데, 그런 사랑이나 깨달음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면, 너무나도 기다리던 아이를 잉태한 부부의 대부분은 그 아이의 모습이나 성격이나
모양을 정해 놓고, 기대를 하지않는다, 오로지 아이를 바랄 뿐이다.
최소한 아기의 탄생의 직전에는, 더 이상의 바램이 없다, 그저 고마운 생각 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가 태어날 당시에 모든 바램은, 아이의 탄생 하나에 함축되어, 다른 바램들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이렇듯이 오직 하나의 소망을 가지고 그 하나가 전체가 된다면 그만이다.
깨달음도 사랑도 마찬가지로 우연치 않은 기회에, 오게되면 온통 하나의 그것 뿐이다.
다른 것이 들어온다면, 그것은 진정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아직도 이런 사랑, 또는 저런 사랑을 그리고 조건을 따져보고, 이렇게 하고 있다면, 소설을 쓰고
있을 뿐, 그런일은 당신의 상상에서나 벌어지는 이야기일 뿐 진정한 사랑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사랑은 당신이 원하든, 원치않든, 스토리에 연연하지 않고, 무차별로 폭격하듯이 오기도 한다.
온통 그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나를 콕 집어서, 어떤 것을 보여주고, 어떤 것을 가리켜서 사랑이라고 하겠는가?
한국에서는 남자가 제일 마지막으로 택하는 고된 직업은 바다로 나가는 배를 타는 선원이고, 여자는
몸을 파는 매춘부라고 한다,.
어느 매춘부의 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그녀는 내 친구에게 처음 그녀의 방에 들어설 때부터 헤어질
때 까지 그를 부를 때 “나의 사랑” 이라고 호칭 했다고 한다,
그 호칭에 이유는 그녀는 어떤 손님이든 그녀와 사랑을 나눌때 “나의 사랑” 이라고 한다고 했고,
정말로 그 녀의 사랑”이라고 느끼면, 그 녀는 상황을 잊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 것처럼, 행복하다고 했다고 한다.
부처님 말씀대로 이 모든게 꿈속의 일 이라면 매춘을 하던, 어떤 고귀한 일을 하던 같은 꿈속의 일이
아닌가?
아직 눈을뜨지 못했다면, 이 말도 함부로 주워 담아 쓰지말기를 바란다,
사랑이란 이름에서 파생된 같은 행위지만, 어떤 이들은 살아가기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살고,
어떤 이들은 생명을 창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우리의 본성은 다를 수 없고 누구에게나 봄은 온다.
몸을 판다는 뜻의 “매춘”을 직역 하면 “봄을 판다.” 이다.
누군가가 사랑을 물어 본다면, 바로 가리켜서 증명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