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는 진실이 없다.
말에는 진실이 없다 하지만, 그 말하는 것이 진실이다, 내가 하는 말은 항상
그 하나를 가리키고, 꾸준히 반복해서 표현 하려고 한다,
그 때 어쩔 수 없어 쓰는 도구의 말이 “이 것이다”
이 때의 이 것은 이 모든것을 가리키며 이때는 어디에도 시선을 둘 곳이 없는,
이 것이지만, 또한 전체를 가리킨다.
말은 오해하기 쉽고, 쉬우면서도 어렵다, 나는 되도록이면 어려운 단어를 안쓰려고
노력하면서, 모두가 바로 이해가능한 기본적인 단어로 글을 쓰려한다,
왜냐하면, 이 것은 새로울 것이 없고, 우리가 항상쓰는 것이고,
보다 직관적인, 쉬운 단어를 쓰는 편이 번역기에 돌리기도 쉽다.
하지만, 단점은 그 단어에 익숙해 진다는 것이다.
내 글을 보는 사람들에게 한가지만 부탁 한다면 내가 쓴 글과 말을 음악을 듣듯이,
읽어 주고, 들어주길 바라고, 외우거나, 마음에 담아두지 말기를 바란다.
이유는 내가 하는 글과 말은 읽거나 듣는, 그 당시가 아니면,
행위의 본질을 잃기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가 비명을 질렀다면, 그 당시 갑자기 튀어나온,
무언가가 날 공격해서, 나도 모르게 나왔던 비명일 뿐,
그 것을 멜로디로 악보에 기록해 놓을 필요는 전혀 없다.
또 내가 여름에 너무 덥다고 말했다고, 그것이 겨울까지 더운 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데, 당신은 흰종이에 잉크의 모양에만 집중하다면,
살아있던, 나의 언어는 생명력을 잃은 채로 종이위에 검은 흔적으로만, 더렵져혀질 것 이다.
그 때가 지나면, 그 것은 퇴색된다.
세상 모든 것은 태어나고 머물다가 허물어지고 없어진다,
말도 예외 일 순 없다.
단지 이 것만이 영원하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것이 없어질때 증명할 수있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주변 사람들의 죽음이나 이별등을 경험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들을 아쉬워 하며 떠나 보낸다,
하지만 나에게 마지막 날이 온다면 그것을 지켜보며, 아쉬워 하는 나를 지켜보는
그 것은 무엇인가? 그런 일이 존재할 수있는가?
지금 이 말 뒤에, 어떤 말을 붙여서 말에 말을 이어간다면, 나의 의도는 이미 퇴색 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말에 진실은 없다, 진실은 오직 말하는 거기에 있다,
다시 그 말을 되세긴다면, 과거의 기억 속에 갇혀사는 사람과 같다.
나는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직 이것을 가리킬 뿐이다,
불교나 동양사상을 배우고 싶다면 집에서 제일 가까운 대학을 가고, 불교사원을 가라,
다만 살아있는 것을 맛보고 싶다면 두뺨을 다 내밀어라,
성인의 말에 “한쪽 뺨을 맞으면, 반대 쪽 뺨도 내어 주어라” 라는 말이 있다,
내맘대로 해석한다면, 처음 한쪽 뺨은 실제라고 믿었던 꿈에 속아서, 맞은 것이고,
두번째 맞는 뺨에서 모든것이 꿈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 말도 들었으면 간직하지 말라, “영화 미션임파서블”에서 읽고나면 폭팔하는
메모처럼 이 글도 당신의 머릿속에서 폭파 되어 사라졌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