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부처님이라면?
만약 당신의 집에 불이 났을 때, 당신의 어린 자녀가 가장 아끼는 인형을 찾으러 다시 불타는 집에 들어 가려 한다면 아이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법화경에는 이런 비유가 있다, 큰 저택에 불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아직 모르는 아이들은 각자 자기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라, 정신이 팔려 있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선의의 거짓말로, 집 밖에 각각 그들이 원하는 동물들이 끄는 마차가 있다고 해서, 그들을 일단 위험한 집으로 부터 구해냈다.
또 이런 비유도 있다. 기억을 잃어 집을 찾지 못하고 오랜 세월을 여기 저기를 떠돌면서 살아가던 어떤 사람이 어느 마을에 엄청나게 큰 저택에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들어간다.
그 때, 마침 집에 돌아와 있던 그 저택의 주인은 그 가 오래전 잃었던 자신의 아들인 것을 한 눈에 알아보지만, 정작 아들은 기억을 상실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들이 집을 나간 뒤 기억을 잃고, 오랜세월 고생했다는 것을 이미 전해 들은 아버지는 집사를 시켜 그를 채용하고, 허드렛 일 부터 시키라고 부탁한다.
그 후, 아버지는 아들이 집안의 곳곳을 다니며, 적응하게 한 다음,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그의 아버지임을 공개한다.
만약 우리가 모두 물고기라고 가정하고 아기 물고기가 어른 물고기인, 당신에게, “물이 어디에 있나요? 목이 마른데 물좀 주세요”라고 부탁한다면 어떻게 알려줘야 하겠는가?
네가 살고 있는 이 곳이 온통 물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만약 그 아기 물고기가 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 그런 바보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극히 간단한 일 일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 것의 대한 가리킴이 모든 경전의 목적이라면, 이 얼마나
간단하지만 어려운 일임을 짐작 할 수있을 것이다.
마치 무언가에 깊이 빠져있는 사람의 시각을 되돌려야 한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어디서 부터 얘기해야 하는가? 만약 누군가가 설법을 듣는다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할 것이고, 만약 그가 말 만을 쫒아가서 자신에 생각에 머물러 산다면, 진실과는 더욱 더 멀어질 것이다.
역대의 선사들은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구제해 왔으나 깨어나는 일이 점차 드물어 지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을 구제의 방법들이 변화하지 못한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듣는 사람도 바른 것을 볼 수있는 눈과 바른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하고 또한, 선을 전해 듣는 것에 있어서 그저 마음이 편해지는 것에만 안주 하지 말고,
실마리를 잡은듯 하면 끈기를 갖고 적극적으로 따라 들어가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찾는 일은 오직, 나 스스로의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부처라면 물속에서, 물을 찾는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