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세상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대표적으로는 하늘과 땅, 낮과 밤, 남자와 여자, 크고 작은 것처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러니 하게도 모두 성격이 반대되는 것들과 짝을 이루고 있다.
자연에서도 이러한 법칙은 어김없이, 적용되고, 자연히 자연을 모방한 우리의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법칙이 적용된다.
뿐만 아니라, 오른쪽과 왼쪽, 위와 아래, 안과 밖 등, 세상의 모든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안보이는 것 조차도 파트너가 아닌 것이 없다.
모든 종교계의 민감한 질문인 “선과 악” “천사와 악마” “ 천당과 지옥” 도 마찬가지로 그들도 파트너이다.
공생하는 동업관계인 셈이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것 아니면 저것, 하나를 택하면, 습관적으로 다른 하나를 급진적으로 배척하고 뚜렸한 이유없이 미워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어린 아기 시절에는 밤과 낮의 구분이 없었다, 하지만 그 아기가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고, 좋고 나쁨을 인지할 즈음, 우리는 기쁨을 아는 동시에 두려움을 알았다.
6조 혜능대사는 부처를 묻는 사람에게 “선과 악을 넘어, 너의 본래 모습은 무엇인가?” 라고 되물어 그를 깨우쳐 주었다.
누구나 쓰고 있는 실체, 그 것은 어느 것과도 짝을 이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구분되어 질수 없고 이름을 붙을 수없다,
왜냐하면, 그 것은 구분을 하는 그 것 자체이고, 이름을 붙이는 그 것 스스로이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음과 양도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우리가 “진리”라고 찾는 것은, 그 것들 이전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과 악을 말하지 않는다, 절대로 무시한다는, 말과는 다르다. 다만, 나의 마음에 비추어서 행하는 결과가 때론 선과 악으로 나타나는 것 이고, 당연히,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나의 몫이다.
깨달은 스님이라도 우연히 교통사고를 낼 수 있으며 그로인해 살인을 할 수있다.
그 것은 “악” 인가? 불행한 얘기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 사고에 대한 결과를 생각하며, 더 이상 그 스님을 찾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누군가 이와 같은 경험을 했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그 때의 감정에 사로잡혀 괴로워 하지말고 혜능대사의 말에 답하라, “선과 악을 넘어, 너의 본래 모습은 무엇인가?”
이러한 이유로, 어느 순간부터, 이유없이 낮을 사랑하고, 밤을 두려워 했던 어린 아이처럼, 음과 양, 선과 악을 뛰어 넘지 못한다면, 진짜를 보지 못한다.
태극의 모양을 보면, 음의 중심에는 양이 있고, 양의 중심에는 음이 있지만, 이 말은 음은 음이 아니고, 양은 양이 아니다.
또 한, 태극, 이전에는 무엇으로도 나눌수 없는 무극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무엇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