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없다.




 

바라는 것이 없는 마음이 자유로운 마음이고 더 나아가 마음까지도 없는 것이 진정한 해탈인 것이다.

다시말해 원하는 것이 있다면 깨어난 자가 아니다,

모든 것이 내것이라면 더 이상 희망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깨달음이 나를 포함한 모든 것에서 전부가 아니라면 다 거짓이고, 그래서 100%가 아니면, 안되는 것이고 0.1%라도 부족하다면 원하고 희망하게 된다.


희망할 것이 없다면, 희망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사라지지만, 그것은 염세주의, 자포자기의 희망없음이 아니다.


당신이 세상에서 부동의 억만장자라고 하더라도 돈에 대하여 걱정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가난하다.

단언컨데, 진정한 부자는 돈에 대한 걱정이 없고 다시말하자면 돈에 대한 희망이 없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에 대하여 끊임없이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

세상에서 돈이 제일 많은 사람일지라도, 걱정을 하는 이유는 언젠가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객관적으로 가진것은 충분하지 않아도 스스로 가진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돈에 대한 생각과 걱정을 안하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부자라고 할 수있다.


고가의 귀한 음식도 가끔이 아닌, 매일 먹어야 한다면 몇일도 못가서 그 음식을 쳐다보기 조차 힘들 것이다.

이처럼 진정으로 무언가가 이미 충분하다고 느낀다면, 그 것에 대한 갈망을 더이상 하지 않는다.

갈망하기는 커녕 냄새만 맡아도 토가 나올 것 같을 것이다.


이 법칙은 돈도, 명예도, 희망도, 자유도, 깨달음 조차도 모두 마찬가지 이다.

무언가를 더 이상 희망하지 않으려면, 정말로 그것에 푹빠져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그러면 그 것을 자체의 의미가 사라져 그 것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다.


무언가를 정말 원하지만, 욕심만큼 가질 수 없어서 포기한 사람도 “희망이 없다” 라고 

말 할 수 있지만, 그 것을 초월한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을 뿐더러 그 희망이란 단어가 없다.


그래서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이 ”깨달음도 없다, 부처도 없다.” 라고 하는 말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받아들인다면, 완전히 다른 말로 모든게 그 것이 되어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없다”라는 말을 우리가 늘 사용하던 말처럼 알아들으면 잘못된 것이다.

“없다”라는 말도 없는 듯 하지만 있고, 있는 듯 하지만 없다고 받아들여야 그나마 제대로 알아 듣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하려는 자들에게는 여전히 “돈”도 있고, “희망”도 있고, “부처”도 있고, 모든 바라는 “마음”도, “깨달음”도 있는 듯 하지만 이미 깨어난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얼마나 많이 있는 것이 중요하지않고, 얼마나 많이 또는 오래 깨달았는 지는 전혀 중요하지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걱정했던 그것들에게서 자유로운가 하는 일이다.


스스로가 돈이 많고, 혹은 돈이 적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는, 당신이 아직도 가난하다는 증거이고, 깨달음이 있고, 혹은 깨달음의 관한 생각이 드는 동안에는, 당신이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천하를 다 가졌지만, 그것을 잃을까봐 두려움에 떠는 왕이되고 싶은가? 아니면, 천하처럼 흔한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삶을 즐기겠는가?


천하가 된 사람은 내가 깨달았다는 생각도 없고 희망도 없다.

그 것이 진정으로 모든 것의 주인인 부처의 참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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