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부처님의 뜻을 살펴보면 우리모두는 이미 부처이다, 여기서 더 무슨말이 필요한가?
우리의 성품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갖춰져 있고 그것이 어떤 계기로 드러나는 것뿐이다.
그러니 나의 본성을 찾겠다고 길을 떠난다면 갈수록 멀어지는 건 마치 자신의 맨얼굴을 보고 싶은 사람이 매일 얼굴에 화장을 하는 것과 같다.
화장을 지우고 싶은 사람에게는 얼굴을 덮고 있던 색을 지울 다른 색의 화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화장은 하는 것보다, 씻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어느 클렌징폼의 광고처럼, 피부를 원래 상태로 돌리는 것 뿐, 그 무엇도 필요치 않다.
그것은 마치 병이든 사람이 어느 날 다시 건강을 되찾은 것과 같으며, 결국 따지고보면 그가 되찾은 것은 없고 원래의 몸으로 돌아온 것뿐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깨달은 이들과 이해가 다른 점은 “나를 찾기위해 길을 떠나는 것”과 “화장을 지우기위해 클린징폼을 사고, 샤워를 하는 것” 또 “환자가 건강을 되찾기 위해 갖은 치료를 하는 것” 등의 모든 행위에 큰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하자면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이 중요한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요한 포인트는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에 있고, 거기에는 어떤 수고로움이나 특정한 행위, 수행으로 인해 내가 없었던 무언가를 얻는 듯하지만 결국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갖추어졌고, 이미 이루었고, 이미 부처이다.” 이 말은 0도와 360도는 같지만 다르다는 말과 일맥 상통한다.
부처님이 되기위해 떠난다면 이미 어긋난 길로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이 서있는 그 자리가 바로 우리가 서있는 자리이다.
전혀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여기서 할수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서 이해하기를 바란다.
“내가 나를 찾는 것, 나를 깨닫는 것, 건강을 찾는 것, 화장을 지우는 것, 악몽에서 깨어나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밖에서 새롭게 얻거나 찾을 수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미 가지고 있다고 굳이 말하기도 이상할 정도로 “이미” 있는 것이다.
내가 건강하지 않은 상태일지도, 그 건강이라는 것이 어디론가 간것이 아니며, 진정한 나를 못 찾겠다고 해서 그것이 나를 떠나서 있지 않고, 화장을 해서 나의 맨 얼굴을 볼 수없다해서 그 얼굴이 어디로 가거나 없어진 것이 아니다.
주의 해야할 것은 이 말을 수준낮은 상태에서 머리로만 이해한다면 0도의 자리인 제자리에서 360도가 같이 한다는 망상을 하는 것이다.
당신은 수행을 해야하고, 노력해야하고, 고된 길을 떠나야 한다.
모든 여정은 빈손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 하지만, 그 마음에는 끝없는 사랑이 넘치고 대자유가 있다.
하지만 그 여정을 통해 동전한닢 이라도 얻은게 있다면 그것이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는 증거가 될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