뗏목


 

부처님은 내말을 뗏목과 같이 여기라고 했다, 풀어서 말하면 뗏목은 영구적으로 쓰는 목적이 아니라 그 당시 필요에 의해서 한시적으로 만들어 쓰는 방편이고, 강을 건넜다면 그 뗏목은 아무리 훌륭하게 만들어 졌더라도 강가에 두고 가야한다.


하지만 부처님의 말씀을 뗏목처럼 받아 들이지않고 부처님 말인지라 고귀하고 거룩하여 모든 말씀을 요트나 유람선처럼 여긴다면 그 말의 향기에 빠져 목적지을 잃은 유령선처럼 떠돌게 될 것이다.


부처님의 진실한 뜻과 통한 사람이라면 그의 훌륭함을 알리는 노력보다 부처님의 깨달음, 그 진실을 세상의 모든 것과 통하게 하여 그의 은혜를 갚으려 할 것이다. 


나에게 깨달음이 없었을 때는 부처님의 자비심과 그의 겸허함, 사랑을 배우려 그의 말을 되새기며 그의 모든것을 배우려고 노력했고 안되면 그를 흉내라도 내려고 했을만큼 그는 큰 스승이며 큰 나무였다.


하지만 큰 나무는 풍성한 열매와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가림막과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지만, 편한함과 안락함만을 좇아 그 나무밑에서 머무른다면 햇빛이 닿지않아 자랄 수없는 것과 같이 부처님은 이러함을 염려하여 다양한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환기를 시켜주셨다.


우리의 목적지는 훌륭한 말씀에 취하여 그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같은 자리이며 그는 우리들에게 그의 발밑의 자리를 안내하시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스스로의 자리를 나누는 것이며 목적지는 결국 그 자리가 우리모두의 자리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뗏목은 사랑하는 사람을 뒤에서 손으로 두눈을 가려 연인이 온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것과 같이 두눈을 가리는 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만 그 행위가 바로 “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40여년을 설법하시고는 임종시에 “나는 한마디도 한적이없다.”라고 하신 것도  자신의 말을 거두어 들여 후대에 오해가 없게 하기위함이고, 부처님 스스로는 경전을 남기지 않은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경전의 여러곳에서 부처님의 걱정이 남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뗏목의 방향을 무시한채 뗏목의 쓰인 나무재질과 뗏목의 구조 등을 연구하여 책을 내고 새로운 종목의 학문을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궁극적 목적을 잃게 만드는 일은 멈추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오랜세월을 상상으로 절대적인 신을 만들고 그 신과 가교 역할을 할 수있는 매개자 혹은 대표할 수있는 리더를 앞세워 사회를 조성하며 살아왔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는 스스로 부족하고 완전하지 않아 표본이 될 사람이나 상상속의 신을 따르려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다.


또한 그런 마음은 특히 동양에서 예의 또는 겸손이라 가르쳐왔고 믿어왔기 때문에 불교가 본질을 잃고 기복신앙으로 변질되어 왔지만 이제부터라도 썪은 뗏목들은 버리고 부처님과 한 마음에 지금 당장 들어가야한다.   


내가 상대보다 약하거나 그에게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갖추는 매너와 겸손은 진정한 것이 아니며 “뗏목을 버려라!” 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부처님의 말도 놓아버리고 또 부처님까지 놓아서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을 때, 모든 것을 가진 진정한 나를 만난다는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을 봐야 할 것이며 그 때 진심으로 세상 만물을 예의와 겸손으로 대할 것이다.


비굴하지 않은 겸손과 예의는 오로지 스스로 다 가진자만이 할 수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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