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이후

 



깨달음이란 획일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다 같은 느낌과 경험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어느 날 나를 포함한 온갖 것들의 본질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는, 온전히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온몸으로 실감되는 경험을 했다.


그로부터 약 1년 동안은, 이유없는 행복감과 자유를 느끼며, 하루하루를 하릴없이 그러나 매우 만족한 삶을 살았고, 이런 대자유와 행복의 길을 안내해 주신 고마운 스승님들을 찾았으나, 그 분들은 어디에도 없었고 다만 무엇이라고도 이름 할 수없는 이것 뿐이었다.


깨어난 후 약 1년이 지나면서 언제나 그렇게 뚜렷 했던 자유와 행복의 나날들은 점차 흐려지기 시작하면서, 다시 불안감이 찾아올 것 같았지만, 나보다 앞서가신 분들의 도움으로 보이는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역시 보는 것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그 둘을 초월해 생각 이전의 상태에 머무르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무엇이든 하려하면 틀렸다는 선사들의 말을 되뇌이면서도, 정작 나는 그 깨달음의 느낌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마치 물에 빠진 어린아이처럼, 온몸에 힘을 주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물에서는 힘을 빼야 물에 뜨는 것을 알면서도, 깨달은 뒤, 약 1년을 그렇게 인생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는 순간, 옛날의 습관으로 돌아가 깨달음의 기억을 더듬어 찾으려하고, 붙잡으려고 온몸이 경직되어 있음을 눈치 못채고, 또 다시 잠들어 악몽의 꿈에서 눈을 떴던 그 느낌을 찾아 헤매며 괴로워 했다.


귀신을 아주 두려워하는 아이가 TV에서 보던 공포영화속의 귀신에 대한 무서움을 극복할때 즈음, 과학과 문명의 발전으로 3D영화로 업그레이드된 귀신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해서, 결국에는 실제로 귀신을 본다해도, 그것이 곧 자기 스스로가 펼쳐놓은 생각속의 일임을 확인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강을 이미 건너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 보트가 너무 귀하고 좋다고 해서, 그 거추장스럽고 큰 보트를 가지고 다닐 수는 없을 것이니, 당연히 강을 건너왔으면 보트는 버려야한다.  


다시말하면, 깨달음의 보트를 통해 강을 건넜다면, 그 깨달음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것이 그저 느낌이라 할지라도 무엇이듯 기억해야하고 손에 쥐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 것은 여행에 방해만 될 뿐이다.


초기경전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구절이 있지만, 선은 실전이다.

실전에서는 무소의 뿔같은 것도 없다, 오로지 무엇이라고 지칭 할 수없는 이 것뿐이다.


그렇기에 깨달음 이후에 일이 더 중요하다고 선인들은 말했다. 

깨달음 전에는 무엇에 속았는 지 모르고 당했다면, 깨달음 이후에는 눈을 뜨고 당하는 꼴이지만, 허상임을 보고 다시 중심을 잡으니, 전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은 않게 되고, 그제서야 제대로된 걸음마가 시작되었다 할 수있다.


혼자 걷지만 혼자가 아니다, 세상이 항상 함께한다, 지평선이 하늘과 땅을 갈라놓지만, 오직 분별하는 마음에서만 그렇다 거기엔 지평선도 없고, 하늘과 땅도 없으며, 하늘과 땅을 나눌 놈도 없다.

둘이 아니고 그렇다고 하나라고 할 것도 없다” 라는  옛 스승님들의 바른 가르침을 새겨 들어, 막혔던 귀가 열리면 하늘이라고 할것도 없고 땅이라고 할 것도 없고, 애초부터 그냥 그 것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익숙한 에고의 유혹의 목소리는 떠나지 않고, 계속 만회의 기회를 엿보고 있으니 방심할 순 없지만, 그렇게 무던히 한 걸음씩 걷다보면, 어느 선사의 말처럼 낯설은 곳에서 익숙해지고, 익숙했던 곳이 낯설어 지는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먼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우리의 발걸음 하나 하나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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