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 or 부처




대부분 불교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외워서 그의 말을 지표로 삼아 자신은 물론이고 널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희망하여 수행하고 공부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하고 스스로를 부처님과 같이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그로 인해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 지는지 세상에 알리려고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거나 연구를 바탕으로 재해석해서 책을 쓰고 그것으로 인해서 사람들로 부터 인정을 받고, 학위를 받는 불교학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은 부처의 의도와 방향을 정확하게 역행하는 일이며, 부처님을 마치 사냥꾼의 집의 벽에 자랑스럽게 박제되어있는 머리만 남은 사슴, 즉 “헌팅트로피”로 만드는 일이다. 


죽어서 먼지가 쌓여있는 사슴은 그 자태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살아있는 것에 비교할 수 없고 비교될 수 없는 것은 차라리 없는 것이 본질을 흐리지 않은 길이다.

오죽하면 옛선사는 입만 벌려도 틀렸다고 했겠는가?


부처의 말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통하는 것이고, 부처의 말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통하는 것이니 깨달음은 부처님이 다시 온다해도 배울수는 없는 것이다.


부처님이 40여년을 설법을 하시고 임종시에 나는 평생 한마디도 설법한 일이 없다고 하신 말씀의 뿌리를 바로 본다면 세상 모든 대학의 부처와 깨달음에 관한 연구는 사슴의 머리와 같이 헌팅트로피를 만드는 작업과 하나도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멈추게 될 것이다.


이세상에는 석가모니부처님뿐만 아니라 많은 부처님과 선사들이 오셔서 오직 하나만을 가리키고 가셨지만 그들은 우리 몸의 일부인 손가락들과 다르지 않았다.

다시말하면 가리키는 손가락에는 진리가 없다.  


내 몸에 붙어있는 열 손가락중에 어떤 손가락이 중요하고 또 어떤 손가락이 그렇지 않는가?

결국 부처님조차도 방편에 불과 하지않다. 

가리키는 손가락 없이도 그것은 항상 존재해 있었다.


손가락의 모양이나 구조등을 깊이 연구해서 불이의 사고를 당한 사람을 보살피고 사회에 공헌 할 수 있지만, 2500년 전 깨달은 옛 사람의 표현과 말을 연구해서 설명할 수없는 진실을 깨닫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학문이 전혀 쓸모없다고는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큰 도움을 주시는 스승님도 한국의 불교대학원을 졸업하신 선학 박사이다.   


하지만 그는 핵심없는 연구, 다시말해 깨달음없는 불교연구에 허망함과 목마름때문에 헤메던 어느날, 진정한 스승을 우연히 만나 그분이 방바닥 두드리는 소리에 40년 부처님의 말씀이 비범할 것도 없는 평범한 노인이 방바닥을 탁!탁! 내려치면서 “이거야!” 하는 소리와 전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일을 경험했다.


그 날, 그의 스승님은 그 것만을 전해주었고, 그 후 나의 스승은 이 것 뿐임을 말하고 전해주고 있다.

이 것은 부처도 스승도 나도 머무를수 없고, 만질 수없다. 하지만 이렇게 보여줄 수는 있다.

다만 당신이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면,  


깨우치기 위해서는 배우고 듣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이 깨달음은 아니다, 과정은 그저 과정일뿐, 스쳐지나는 모든 것은 방법(방편)이다.


스쳐지나갈 수 없유일한 그것은 무엇인가?    


학자의 말을 듣고 학자가 될 수는 있으나 부처가 될 수 없고, 부처의 말을 듣고 부처는 될 수는 있으나 학자는 될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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